NDC Oslo 2025 - 코딩하는 디자이너 AI 시대에 왜 더 중요해졌을까?
여기 아주 좋은 유튜브 강연이 있는데요, '디자인 엔지니어링'이라는, 어쩌면 조금은 생소할 수 있는 주제에 대한 내용입니다.
특히 요즘처럼 AI가 화두인 시대에 이 역할이 왜 점점 더 중요해지고 있는지, GitHub의 디자인 총괄(Head of Design)인 Diana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아주 흥미롭게 풀어내더라고요.
그래서 이 강연의 핵심만 전체적으로 살펴볼까 합니다.
기술과 창의성의 교차점에서 길을 찾다
발표자인 Diana는 원래 인쇄소에서 일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기술적인 일과 창의적인 일 사이에서 고민하던 중, 우연히 사내 도구를 만들게 된 경험이 그녀의 인생을 바꿔놓았습니다.
당시 회사는 구매 주문 시스템을 교체하는 중이었고, 그 공백을 메울 임시 소프트웨어가 필요했거든요.
그녀는 Access 데이터베이스를 위한 GUI를 직접 만들었는데, VBA(Visual Basic for Apps)를 조금 다룰 줄 알았던 거죠.
복잡한 Access 프로그램을 동료들이 잘 쓰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커다란 버튼과 입력 폼으로 구성된 아주 간단하고 예쁜 UI를 만들어줬다고 해요.
이게 바로 그녀가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한 첫 번째 UI였던 셈입니다.
이 경험을 통해 기술과 창의성이 결합될 때 얼마나 강력한 시너지가 나는지 깨닫게 되었고, 웹의 세계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게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하이브리드' 스킬이 열어준 기회들
이후 호주로 넘어가서 잠시 배낭여행을 하다가, 돈이 떨어져 시드니에서 일자리를 구하게 되는데요.
지방 정부 기관에서 웹사이트를 만들고 그래픽 디자인도 할 줄 아는 사람을 찾고 있었고, 그녀는 이 '하이브리드' 스킬 덕분에 스폰서십까지 받으며 호주에 머물 수 있게 됩니다.
이때부터 그녀는 시드니의 웹 커뮤니티에 참여하면서 자신처럼 기술과 창의성을 모두 가진 사람들을 만나기 시작하는데요.
Canva의 초기 멤버이자 창업자, CI/CD 솔루션인 Buildkite의 창업자 등, 당시 만났던 동료들은 모두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을 넘나드는 역량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을 보며 Diana는 디자이너가 코드를 배우는 것이 얼마나 큰 기회가 될 수 있는지 확신하게 되었다고 해요.
그리고 GitHub와의 첫 만남도 해커톤에서 이루어졌는데요.
프론트엔드 코드를 다룰 줄 안다는 이유로 팀에 합류하게 되었고, 개발자들과 같은 공간에서, 같은 도구(Git, GitHub)를 사용하며 협업하는 경험에 큰 매력을 느꼈다고 합니다.
결국 이 경험은 훗날 그녀가 GitHub에 합류하는 계기가 되었죠.
디자인과 개발은 왜 분리되었을까?
하지만 이런 하이브리드 스킬이 항상 환영받았던 건 아니라고 하는데요.
샌프란시스코의 한 스타트업에서 일할 때는 상사가 "왜 디자이너 화면에 코드가 떠 있냐"며 화를 내기도 했다고 합니다.
작은 디자인 수정이나 이미지 교체 같은 건, 엔지니어에게 파일을 넘기고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코드에서 수정하는 게 훨씬 빨랐는데도 말이죠.
사실 인간-컴퓨터 상호작용(HCI) 디자인은 컴퓨터 과학에서 파생된 분야라 처음부터 이렇게 분리되어 있지는 않았거든요.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조직도에서 디자인과 개발은 명확히 나뉘었고, 사람들은 '디자이너' 혹은 '엔지니어' 둘 중 하나의 길을 선택하라는 압박을 받게 된 겁니다.
'프론트엔드의 대분열' 시대
이러한 분리는 프론트엔드 개발 영역 내에서도 심화되었는데요.
CSS-Tricks의 창립자로 유명한 Chris Coyier가 2019년에 쓴 'The Great Divide'라는 글은 이 현상을 잘 보여줍니다.
그는 "두 명의 프론트엔드 개발자가 바에 앉아 있는데, 나눌 대화가 하나도 없다"는 말로 글을 시작하죠.
한쪽은 JavaScript 중심의 복잡한 애플리케이션 로직을 다루는 개발자, 다른 한쪽은 HTML, CSS, 디자인, 인터랙션, 접근성 등 사용자 인터페이스 자체에 집중하는 개발자로 나뉘었다는 겁니다.
이후 'front-of-the-front-end'와 'back-of-the-front-end'라는 용어까지 등장하며 이 논쟁은 더 뜨거워졌죠.
물론 "왜 굳이 한쪽을 선택해야 하는가?"라는 반론도 있었지만, 이 시기는 프론트엔드 개발의 역할이 극도로 분화되고 전문화되던 때였음은 분명합니다.
AI가 다시 경계를 허물다
그런데 최근 등장한 AI가 이 분리된 경계를 다시 허물고 있다고 발표자는 이야기하는데요.
AI 기반의 기능을 디자인할 때는, Figma 같은 디자인 툴에서 만든 정적인 목업만으로는 좋은 경험을 만들고 있는지 확신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AI 모델은 '비결정적(non-deterministic)'이거든요.
똑같은 프롬프트를 입력해도 매번 조금씩 다른 결과가 나오고, 모델을 바꾸면 완전히 다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죠.
디자이너들은 이런 예측 불가능성을 다루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GitHub Copilot이 처음 나왔을 때 '고스트 텍스트(ghost text)'라는 UI를 채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는데요.
AI가 제안하는 코드가 항상 완벽하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개발자가 그 제안을 쉽게 무시하거나 받아들일 수 있도록, 즉 개발의 '흐름(flow)'을 방해하지 않도록 디자인한 겁니다.
결국 AI 시대의 디자이너는 다양한 모델을 직접 테스트하고 경험을 확인하기 위해, 엔지니어들이 사용하는 것과 동일한 도구를 점점 더 많이 사용해야만 하는 상황이 된 거죠.
피그마를 탈출해서 직접 만들어봐야만 진짜 경험을 알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디자인 엔지니어'는 대체 누구인가?
이렇게 디자인과 개발의 경계가 다시 가까워지면서 '디자인 엔지니어'라는 역할이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발표자는 디자이너, 프론트엔드 엔지니어, 그리고 디자인 엔지니어의 차이를 명확하게 설명하는데요.
- 디자이너: 코드로 프로토타입을 만들 수는 있지만, 최종 프로덕션 코드를 구현하고 배포하는 책임까지는 지지 않습니다.
- 프론트엔드 엔지니어: 훌륭한 사용자 경험을 만드는 책임은 있지만, 어떤 경험을 만들어야 할지, 즉 레이아웃이나 비주얼 같은 '디자인'을 직접 책임지지는 않습니다.
- 디자인 엔지니어: '엔지니어'라는 직함이 붙는 만큼, 디자인뿐만 아니라 프로덕션 코드를 구현하고 배포하는 책임까지 집니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코드로 디자인을 하는 사람들이죠.
이들의 가장 큰 장점은 바로 '압도적으로 빠른 피드백 루프'입니다.
문제를 발견하면 Figma에서 디자인을 수정하고 엔지니어에게 전달하는 대신, 직접 코드를 수정해서 아이디어를 바로 구현하고 그 느낌을 확인할 수 있는 거죠.
디자인 엔지니어의 스펙트럼
디자인 엔지니어라고 해서 다 같은 일을 하는 건 아니라고 하는데요.
어떤 팀에 속해 있느냐에 따라 역할이 매우 다양합니다.
- 마케팅 팀: 창의적인 인터페이스, 애니메이션, 스크롤 성능 최적화 등 시각적으로 매우 디테일한 작업을 합니다.
- 브랜드 팀: Mona Sans 같은 '가변 폰트(variable font)'를 직접 디자인하고 개발하는 등 매우 창의적인 프로젝트를 수행하기도 합니다.
- 디자인 시스템 팀: Figma 같은 디자인 툴을 사용해 디자이너와 함께 컴포넌트를 설계하고, 이를 코드로 구현하여 디자인과 코드 사이의 언어를 통일시키는 역할을 합니다.
- 제품 팀: GitHub Copilot Workspace처럼 AI 기반의 신기능을 프로토타이핑하고, 실제 구현까지 참여합니다. Workspace의 초기 아이디어와 구현도 디자인 엔지니어의 손에서 나왔다고 하네요.
어떻게 디자인 엔지니어가 될 수 있을까?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이런 하이브리드 전문가가 될 수 있을까요?
발표자는 '호기심'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엔지니어라면 최종 결과물이 어떻게 보이는지에 대해 더 관심을 갖고, 디자이너라면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해 궁금해하는 것부터 시작이라는 거죠.
이 호기심은 '연습'으로 이어지고, 연습을 통해 실력이 늘면 그 분야에 대한 '열정'이 생겨날 수 있습니다.
다행히 AI는 이 과정을 더 쉽게 만들어주고 있는데요.
GitHub Copilot 같은 도구는 디자이너가 코드의 세계로 들어가는 장벽을 낮춰주고, "스포티파이 같은 음악 앱을 만들어줘"와 같은 프롬프트를 통해 엔지니어는 좋은 디자인의 패턴을 학습할 수 있습니다.
AI가 디자인의 '바닥은 높여주고, 천장은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죠.
인간의 창의성은 대체될 수 없을까?
발표자는 AI 시대에도 인간 고유의 창의성이 중요하다고 말하며 몇 가지 예시를 드는데요.
가우디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처럼 인간의 상상력으로 빚어낸 경이로운 결과물, 손의 미세한 떨림과 움직임이 만들어내는 자신만의 '스타일', 그리고 우연한 발견이 낳은 '행복한 사고(happy accident)' 같은 것들입니다.
GitHub의 마스코트인 '옥토캣(Octocat)'도 원래는 404 페이지에 쓰려고 스톡 일러스트 사이트에서 구매한 이미지였다고 해요.
이런 우연한 선택이 지금은 GitHub 브랜드의 핵심 정체성이 되었죠.
과연 AI에게 이런 '행복한 사고'를 만들어달라고 요청할 수 있을까요?
결국 AI가 만든 '충분히 좋은(good enough)' 결과물과, 인간의 손길과 이야기가 담긴 결과물 사이에는 다른 종류의 '가치'가 존재한다는 겁니다.
미래를 향한 제언
결국 AI는 우리가 사용하는 또 하나의 '매체(medium)'가 될 것이고, 디자인과 엔지니어링의 경계는 더욱 흐릿해질 거예요.
발표자는 더 많은 회사들이 이 흐릿한 경계를 포용하고, 사람들이 한 가지 길만을 선택하도록 강요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합니다.
친구의 말을 인용하며 강연을 마무리하는데요.
"당신은 무엇이든 할 수 있고, 그 교차점에는 여전히 황금이 있습니다."
디자인과 개발, 그 흐릿한 경계에서 새로운 기회를 찾고 있는 분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메시지인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