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낳지 않는 세계 선택이라는 이름의 절망
인류 역사상 가장 거대한 선택
전 세계적으로 아이들이 태어나지 않고 있습니다.여성 한 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는 1960년 5명에서 오늘날 2.2명으로 급감했으며, 한국을 비롯한 많은 선진국에서는 인구 유지를 위한 최소 수준인 2.1명에도 한참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전례 없는 현상을 두고, 세상의 진단은 크게 두 갈래로 나뉩니다.
하나는 이것을 인류의 진보, 특히 여성의 지위 향상이 가져온 '긍정적 결과'로 보는 시각입니다.
여성들이 더 이상 출산과 육아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경력과 삶을 주체적으로 설계할 수 있게 되면서, 출산은 필수가 아닌 '선택'의 영역으로 들어왔다는 분석입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전혀 다른 목소리가 존재합니다.
이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애초에 선택지가 주어지지 않은 '절망'의 결과라는 주장입니다.
살인적인 물가와 집값, 불안정한 고용, 그리고 각자도생으로 내몰리는 사회 속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상상할 수 없는 사치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과연 우리는 아이를 낳지 않기로 '선택'한 것일까요, 아니면 낳을 수 없도록 '내몰린' 것일까요.
이 질문은 현대 사회의 가장 깊은 모순과 우리가 마주한 시대의 진짜 얼굴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풍요로운 시대의 그림자
표면적으로, 현대 사회는 과거 어느 때보다 풍요롭고 개인의 자유가 존중받는 시대입니다.특히 여성들은 고등 교육의 기회를 누리고 경제적 자립을 이루며 사회의 모든 영역에서 남성과 동등한 주체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사회 변화 속에서 결혼과 출산은 더 이상 인생의 유일한 경로가 아니며, 개인의 성취와 여가, 자아실현 또한 중요한 가치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낮은 출산율은 사회 발전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해석됩니다.
과거 '인구 폭탄'이라는 용어가 유행하며 인구 증가가 환경 파괴와 자원 고갈의 주범으로 지목되었던 것을 생각하면, 오히려 인구 감소 추세가 지구의 지속 가능성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시각도 존재합니다.
실제로 청소년 출산율이 급격히 감소하는 등, 계획되지 않은 임신이 줄어드는 것은 명백한 사회적 진보의 증거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낮은 출산율을 '개인의 합리적 선택'과 '사회 발전'의 산물로 보는 시각은 상당한 설득력을 가집니다.
선택의 비용, 포기의 무게
하지만 이 '선택'이라는 단어의 이면을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집니다.현대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은 엄청난 경제적, 시간적, 그리고 감정적 비용을 수반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지난 수십 년간 생산성은 폭발적으로 증가했지만, 그 과실은 노동자에게 제대로 분배되지 않았습니다.
임금은 정체되었지만 집값과 교육비, 생활비는 천정부지로 치솟았습니다.
과거 한 사람의 소득으로도 가정을 꾸릴 수 있었던 시대는 이제 아득한 전설이 되었고, 맞벌이를 해도 내 집 마련은커녕 기본적인 생활을 유지하기조차 벅찬 것이 현실입니다.
과거 아이를 함께 돌봐주던 '마을 공동체'는 해체되었습니다.
부모, 특히 여성은 일과 육아라는 이중고를 온전히 혼자 감당해야 하며, 이는 개인의 삶을 송두리째 갈아 넣어야 하는 '끝없는 노동'을 의미합니다.
또한, '좋은 부모'에 대한 사회적 기준은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아졌습니다.
단순히 먹이고 입히는 것을 넘어, 아이의 정서적 안정과 창의력, 사회성까지 모든 것을 완벽하게 책임져야 한다는 압박은 부모 되기를 더욱 두렵고 어려운 일로 만듭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결정은, 수많은 다른 가능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는 적극적인 선택이라기보다는, 감당할 수 없는 부담 앞에서 내리는 '합리적인 포기'에 가깝습니다.
깨져버린 사회 계약의 결과
문제의 본질을 더 깊이 파고들면, 저출산은 단순히 개인의 선택이나 경제적 문제를 넘어 '사회 계약'의 붕괴를 드러내는 현상임을 알 수 있습니다.사회 계약이란, 개인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열심히 일하고 의무를 다하면, 사회는 그에게 안정적인 삶과 미래를 보장해준다는 암묵적인 약속입니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세대는 이 약속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고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계층 이동의 사다리는 끊겨 있고,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의 굴레를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신의 생존조차 불확실한데, 다음 세대를 낳아 기르라는 요구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 뿐입니다.
일각에서는 저출산 위기를 '자본주의 시스템의 위기'로 진단하기도 합니다.
끊임없는 성장을 동력으로 삼는 자본주의는 더 많은 노동력과 소비자를 필요로 하지만, 정작 그 구성원들에게는 성장의 과실을 나누지 않고 착취를 강화함으로써 스스로의 기반을 무너뜨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더 많은 아이를 낳아라'는 기성세대의 외침은, 결국 자신들의 연금과 복지 시스템을 유지하기 위해 다음 세대의 희생을 강요하는 '폰지 사기'와 다를 바 없다는 냉소적인 시각이 팽배합니다.
결국, 아이를 낳지 않는 것은 이 깨져버린 계약에 대한 젊은 세대의 조용한 '파업'이자 '저항'인 셈입니다.
우리가 답해야 할 진짜 질문
저출산 현상은 인류가 마주한 가장 복잡하고 중대한 도전 중 하나입니다.하지만 이 문제의 해결책은 단순히 출산 장려금 몇 푼을 쥐여주거나, '전통적 가족 가치'를 부르짖는다고 해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 사회의 근본적인 구조와 방향에 대한 질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과연 어떤 사회를 만들고 싶은가.
소수의 부를 위해 다수가 끝없는 경쟁과 불안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사회인가, 아니면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 누구나 인간다운 삶을 누리고 가정을 꾸릴 희망을 가질 수 있는 사회인가.
저출산은 문제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닙니다.
진짜 문제는 청년들을 절망으로 내모는 불평등과 불안정한 사회 구조에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던져야 할 진짜 질문은 '어떻게 하면 아이를 더 낳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이 고통이 아닌 기쁨이 되는 사회를 만들 것인가'입니다.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사라진 세상이라는 미래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