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ovember 12, 20253 minutes
요즘 우리가 사용하는 마우스는 정말 편리해졌는데요.
컴퓨터에 유에스비(USB) 선을 꽂거나, 블루투스(Bluetooth)로 연결하고 건전지만 넣어주면 바로 작동합니다.
하지만 컴퓨터 기술에 조금이라도 관심 있는 분들이라면, 아주 먼 옛날에는 지금과는 전혀 다른 방식의 마우스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실 겁니다.
바로 ‘시리얼 마우스(Serial Mouse)‘라고 불리는 유물인데요.
이 마우스는 지금의 USB나 모니터 케이블과는 다른, 마치 VGA 케이블처럼 생긴 9개의 핀이 달린 ‘알에스-232(RS-232)‘라는 구형 직렬 포트에 연결해서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아주 기묘한 점이 있거든요.
이 시리얼 포트에는 전원을 공급하기 위한 전용 핀이 따로 없었다는 사실입니다.
USB나 그 이전에 사용되던 피에스투(PS/2) 포트만 해도 분명히 전원 공급을 담당하는 핀이 존재하는데, 대체 이 녀석은 어디서 전기를 끌어와서 작동했던 걸까요?
오늘은 마치 미스터리처럼 느껴지는 이 구시대 유물의 작동 원리에 대해 아주 쉽고 재미있게 파헤쳐 보겠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시리얼 마우스는 필요한 전기를 데이터 신호선에서 몰래 ‘기생하듯’ 훔쳐 썼는데요.
이게 무슨 말이냐면, 원래 시리얼 포트의 여러 핀들 중에는 데이터를 보내고 받기 위한 통신 목적 외에, 서로 통신할 준비가 되었는지 상태를 확인하는 ‘제어 신호선’들이 있었습니다.
대표적으로 ‘RTS(Request to Send, 송신 요청)‘나 ‘DTR(Data Terminal Ready, 데이터 단말 준비)’ 같은 핀들이 바로 그것이거든요.
원래 이 핀들은 데이터를 주고받을 준비가 됐다는 신호를 보내는 용도이지, 안정적으로 전기를 공급하는 역할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초창기 엔지니어들은 이 신호선에 항상 미세한 전압이 흐른다는 점을 놓치지 않았는데요.
바로 이 미세한 전력을 교묘하게 끌어모아 마우스를 작동시키는 데 사용했던 것입니다.
공식적인 방법은 아니었지만, 그 시절 엔지니어들의 기발한 ‘꼼수’ 혹은 ‘우아한 해킹’이었던 셈입니다.
그렇다면 그 미미한 전력만으로 어떻게 마우스가 작동할 수 있었을까요?
그 비밀은 바로 옛날 마우스의 단순한 구조에 있었습니다.
아마 30대 이상의 분들이라면 책상 위에서 묵직한 마우스를 이리저리 굴리던 기억이 나실 텐데요.
이 ‘볼 마우스’의 내부를 들여다보면 아주 간단한 기계 장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무공이 굴러가면, 그 움직임이 내부에 있는 두 개의 작은 롤러(하나는 가로 방향, 다른 하나는 세로 방향)를 회전시키는 구조이거든요.
그리고 이 롤러의 끝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촘촘하게 뚫린 원판이 달려있고, 그 양옆에는 적외선 발광 다이오드(LED)와 센서가 마주 보고 있습니다.
롤러가 회전하면서 원판이 돌아가면, 구멍을 통해 빛이 통과했다가 막혔다가를 반복하게 되는데요.
센서는 이 빛의 깜빡임 횟수와 순서를 감지해서 마우스가 얼마나 빨리, 어느 방향으로 움직였는지를 컴퓨터에 전달하는 것입니다.
요즘 마우스가 고해상도 카메라로 바닥을 촬영하고, 복잡한 이미지 프로세싱을 거치며, 화려한 RGB 조명까지 켜는 것과 비교하면 정말 단순하기 짝이 없는 방식이었죠.
필요한 전력이라고는 작은 적외선 LED 몇 개를 켜고, 간단한 신호를 처리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신호선에서 훔쳐 온 아주 적은 전력만으로도 충분히 작동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야기가 나온 김에 많은 분들이 공감할 만한 추억 하나를 소환해 볼까 하는데요.
바로 ‘마우스 볼 청소’입니다.
볼 마우스를 오래 사용하다 보면 책상 위의 먼지와 손때 같은 이물질이 고무공에 묻어 내부 롤러에 두꺼운 띠처럼 엉겨 붙곤 했거든요.
이렇게 때가 끼면 롤러가 제대로 구르지 않아 마우스 커서가 버벅거리거나 엉뚱한 방향으로 튀기 일쑤였습니다.
그럴 때면 마우스 밑면의 뚜껑을 돌려 묵직한 고무공을 꺼내고, 롤러에 붙은 검은 때를 손톱이나 뾰족한 도구로 긁어내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의식과도 같았는데요.
그렇게 뭉쳐 나온 먼지 덩어리를 보며 왠지 모를 희열을 느끼고, 다시 부드럽게 움직이는 커서를 보며 만족스러워했던 기억은 그 시대를 경험한 사람만이 공유할 수 있는 소중한 추억입니다.
학교 컴퓨터실에서는 장난기 많은 친구들이 이 마우스 볼을 몰래 빼돌려 다음 시간 수업을 방해하는 짓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죠.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불편함이지만, 어찌 보면 기술의 발전이 우리에게서 앗아간 소소한 재미가 아니었을까 싶기도 한데요.
전원선 하나 없이 신호선에 기생해 작동하던 낡은 시리얼 마우스의 이야기 속에는, 제한된 환경 속에서도 해결책을 찾아냈던 엔지니어들의 창의성과 아날로그 시대의 정겨운 추억이 함께 담겨있는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