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론 머스크의 '로봇 경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November 15, 20253 minutes

일론 머스크의 ‘로봇 경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일론 머스크의 ‘로봇 경찰’, 유토피아일까 디스토피아일까

일론 머스크가 정말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세상에 던졌는데요.

바로 테슬라(Tesla)의 인간형 로봇 ‘옵티머스(Optimus)‘가 사람을 24시간 따라다니며 범죄를 막는다는 구상입니다.

교도소 없는 세상을 만들 수 있다는 건데, 언뜻 들으면 정말 혁신적인 미래 같거든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이 아이디어에서 장밋빛 미래가 아닌, 서늘한 경고를 읽어내고 있습니다.

단순히 기술에 대한 찬반을 넘어, 훨씬 더 깊고 근본적인 질문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건데요.

오늘은 이 ‘로봇 경찰’이라는 아이디어 뒤에 숨겨진 사람들의 진짜 속내와 걱정이 무엇인지 깊이 파고들어 보겠습니다.

그들만의 유토피아, 우리에겐 디스토피아

가장 먼저 터져 나오는 목소리는 이 기술이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냐는 질문인데요.

로봇이 모든 사람을 공평하게 감시할 것이라는 생각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라는 지적입니다.

사실 실리콘밸리의 거부들 사이에서 오래전부터 돌던 이야기가 있거든요.

세상이 무너지는 ‘그날’을 대비해 자신들만의 벙커를 짓는데, 정작 그들을 지킬 경호 인력들을 어떻게 통제할지 고민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들이 내놓은 해법은 경호원들을 가족처럼 대우하고 신뢰를 쌓는 것이 아니었는데요.

오히려 목에 ‘폭탄 목걸이’를 채우거나 DNA가 인식되어야만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만드는 통제 시스템에 더 관심을 보였다는 겁니다.

이런 일화를 보면 그들이 평범한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 시선이 느껴지는데요.

결국 ‘로봇 경찰’도 비슷한 맥락에서 해석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그 로봇은 월스트리트의 내부자 거래나 교묘한 탈세 같은 ‘화이트칼라 범죄’를 막으러 가지는 않을 거거든요.

대신 당장 생계가 어려운 사람이 빵 하나를 훔치는 것을 막는 데 온 힘을 쏟게 될 것이라는 냉소적인 전망이 지배적입니다.

결국 기술의 발전이 모두를 위한 유토피아를 만드는 게 아니라, 부유층은 더 안전하게 보호받고 평범한 사람들은 더 철저하게 감시당하는 ‘기술 봉건주의(Techno Feudalism)’ 사회를 여는 것 아니냐는 깊은 우려인 셈입니다.

혁신인가, 아니면 또 다른 ‘공약’인가

두 번째는 제안의 내용보다 제안을 한 ‘사람’에 대한 근본적인 불신인데요.

우리는 지난 몇 년간 ‘곧 실현될 미래’에 대한 수많은 약속들을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운전대에서 완전히 손을 떼도 되는 ‘완전 자율 주행’이 몇 년 안에 온다고 했었고, 수많은 자율주행 택시가 도시를 누비는 미래도 눈앞에 다가온 것 같았거든요.

하지만 그 약속들은 여전히 현실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이번 ‘로봇 경찰’ 아이디어 역시 진지한 기술적 청사진이라기보다는,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주가를 관리하기 위한 또 하나의 ‘선언’으로 보는 시각이 많습니다.

더 나아가 이런 사회 시스템의 근간을 바꾸는 기술을 제안하는 사람의 개인적인 안정성과 신뢰도에 대한 의문도 제기되는데요.

충동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언행을 보여온 인물이 설계한 감시 시스템을 과연 우리가 믿고 받아들일 수 있겠냐는 것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완벽하다고 해도, 그 기술을 통제하는 최종 키를 쥔 사람을 신뢰할 수 없다면 그건 완벽한 통제 시스템이 아니라 완벽한 흉기가 될 수 있으니까요.

결국 많은 사람들에게 이 제안은 혁신에 대한 기대감보다는, 또 다른 공허한 약속과 잠재적 위험에 대한 피로감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어디서 본 듯한 미래, 원작은 이렇지 않았다

사실 ‘기계가 인간을 감시하고 통제한다’는 아이디어는 전혀 새롭지 않은데요.

수십 년 동안 수많은 SF 영화와 소설이 바로 그 위험성을 경고해왔기 때문입니다.

특히 이언 M. 뱅크스(Iain M. Banks)의 SF 소설 ‘컬처(Culture)’ 시리즈에는 머스크의 아이디어와 거의 똑같은 ‘슬랩 드론(Slap-drone)‘이라는 개념이 나오거든요.

범죄자에게 작은 드론을 붙여서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못하도록 막는다는 설정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아주 결정적인 차이가 있는데요.

소설 속 ‘컬처’는 돈도 없고, 사유재산도 없으며, 모든 것이 풍족해서 누구나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아나코-코뮤니즘’에 가까운 유토피아 사회입니다.

‘슬랩 드론’은 그런 완벽한 사회에서조차 적응하지 못하는 극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최소한의 교화 장치였던 것입니다.

문제는 바로 이 ‘맥락’을 전부 거세해 버린 건데요.

불평등과 결핍이 만연한 지금 우리 사회에 ‘통제’라는 기술만 쏙 빼서 이식하겠다는 발상은 원작의 철학을 완전히 오해한 것이라는 비판입니다.

이것은 마치 디스토피아 소설을 보고 ‘이걸 만들면 안 되겠구나’라고 깨닫는 게 아니라, ‘와, 여기 나오는 통제 시스템 정말 멋진데? 우리도 만들자!‘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는 냉소적인 반응입니다.

결국 이 논쟁은 우리에게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 그 기술을 ‘어떤 사회’에 ‘어떤 철학’으로 적용할 것인지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