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cember 4, 20255 minutes
길을 걷다 보면 가끔 고개를 갸웃하게 만드는 가게들을 마주칠 때가 있는데요.
분명 손님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파리만 날리는데, 몇 년째 망하지 않고 멀쩡히 간판을 걸고 영업하는 곳들 말입니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해외 커뮤니티에서는 이런 곳들을 두고 ‘저기는 100% 돈세탁하는 곳이다’라는 농담 반 진담 반의 이야기가 오가곤 하는데요.
도대체 어떤 원리로 운영되기에 손님 없이도 돈을 버는 것처럼 보이는지, 영화나 드라마에서 자주 듣던 ‘자금 세탁’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궁금하셨을 겁니다.
오늘은 우리가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이 어둠의 경제학을 아주 쉬운 예시를 통해 파헤쳐 보려고 하는데요.
복잡한 금융 용어 대신, 동네 이발소와 사탕 가게의 예시를 통해 그 은밀한 메커니즘을 들여다보겠습니다.
먼저 자금 세탁의 가장 기본적인 개념부터 짚고 넘어가야 하는데요.
쉽게 말해 범죄나 불법적인 경로로 얻은 ‘더러운 돈’을 국세청이나 수사 기관이 의심하지 않도록 ‘깨끗한 돈’으로 바꾸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불법적인 일로 현금 10억 원을 벌었다고 가정해 볼까요?
이 돈을 당장 은행에 입금하거나 슈퍼카를 사버리면 바로 국세청의 추적을 받게 됩니다.
소득 신고도 없는 사람이 갑자기 큰돈을 쓰면 “이 돈 어디서 났어?“라고 물어볼 게 뻔하거든요.
그래서 범죄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이 돈에 대해 ‘세금’을 내고 싶어 합니다.
세금을 냈다는 건 국가가 그 돈의 출처를 합법적인 소득으로 인정해 줬다는 증명서와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이 과정을 수행하기 위해 가장 흔하게 이용되는 것이 바로 ‘현금 장사’를 하는 소규모 자영업인데요.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업종이 바로 이발소나 미용실 같은 서비스업입니다.
이발소는 자금 세탁을 하기에 정말 완벽한 조건을 갖추고 있거든요.
왜냐하면 물건을 파는 게 아니라 ‘기술’과 ‘시간’을 파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당신이 슈퍼마켓을 운영하며 돈세탁을 하려 한다면 꽤나 복잡한 문제에 부딪히게 되는데요.
매출을 부풀리려면 물건이 그만큼 팔린 것처럼 꾸며야 하는데, 그러려면 재고 관리 장부도 맞춰야 하고 실제로 물건을 사들인 영수증도 있어야 합니다.
팔리지도 않은 물건을 잔뜩 사서 버리거나, 창고에 쌓아두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는 뜻이죠.
하지만 이발소는 다릅니다.
가위와 빗, 그리고 이발사의 손기술만 있으면 되거든요.
실제로는 하루에 손님이 한 명밖에 오지 않았더라도, 장부에는 “오늘 현금 손님 50명이 다녀갔음"이라고 적으면 그만입니다.
누구도 이발사가 가위질을 50번 했는지 1번 했는지 확인할 방법이 없으니까요.
이렇게 만들어진 가짜 매출에 당신이 가지고 있던 불법 자금(현금)을 섞어 넣으면 마법 같은 일이 벌어지는데요.
그 더러운 돈은 이제 ‘이발소가 열심히 일해서 번 정당한 수익’으로 둔갑하게 됩니다.
그리고 당당하게 세금을 내고 나면, 남은 돈은 은행에 넣든 집을 사든 아무도 뭐라 할 수 없는 완벽하게 깨끗한 돈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미드 ‘브레이킹 배드’나 ‘오자크’ 같은 작품에서 주인공들이 기를 쓰고 세차장이나 식당을 운영하려는 이유이기도 한데요.
물론 식당이나 사탕 가게 같은 소매점도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다만 서비스업보다는 훨씬 더 치밀한 계산이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샌드위치 가게를 한다면, 샌드위치를 팔았다고 신고한 만큼의 빵과 고기를 샀다는 증거가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일부러 식자재를 대량으로 구매한 뒤 몰래 폐기 처분하거나, 직원들이 다 먹어 치운 것처럼 꾸미기도 하는데요.
이런 번거로움과 리스크 때문에 재고 관리가 필요 없는 서비스업이 범죄자들에게 더 매력적인 선택지가 되는 겁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이 드실 텐데요.
“영화 보면 미술품 경매로 돈세탁을 많이 하던데, 그건 왜 안 하죠?“라는 질문입니다.
많은 분들이 미술품 거래를 최고의 돈세탁 수단으로 알고 계시지만, 실상은 조금 다릅니다.
물론 미술품은 가격이 정해져 있지 않고 주관적이라 가치를 조작하기 쉽다는 장점이 있기는 한데요.
하지만 수십억 원짜리 그림을 현금 박치기로 사고파는 행위 자체가 이미 국세청의 요주의 감시 대상입니다.
게다가 미술품은 거래 기록이 너무 명확하게 남고, 전문가들의 감정 평가라는 까다로운 절차도 거쳐야 하거든요.
그래서 전문가들은 미술품이 ‘돈세탁’보다는 ‘탈세’나 ‘뇌물 공여’의 수단으로 더 많이 쓰인다고 지적합니다.
예를 들어 누군가에게 뇌물을 주고 싶을 때, 그 사람의 형편없는 그림을 10억 원에 사주는 방식인 거죠.
또는 싼값에 산 그림의 가치를 뻥튀기해서 기부한 뒤 세금 공제를 받는 식으로 악용되기도 합니다.
즉, 매일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현금 뭉치를 처리해야 하는 마약상이나 범죄 조직 입장에서는 미술품 거래가 그리 효율적인 수단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들에게는 차라리 동네에 있는 텅 빈 젤리 가게나 손님 없는 네일숍이 훨씬 안전하고 확실한 금고인 셈이죠.
건설업 또한 비슷한 맥락에서 오해를 받곤 하는데요.
건설업은 자재비나 인건비를 부풀리기 쉬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돈을 ‘세탁’하기보다 ‘빼돌리기(횡령)’ 좋은 업종에 가깝습니다.
건물은 눈에 보이는 실체가 있고 들어가는 자재의 양이 정해져 있어서, 매출을 무한정 부풀리기가 쉽지 않거든요.
오히려 공사비를 부풀려 회삿돈을 뒤로 챙기거나,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비용을 과다 계상하는 탈세의 목적으로 더 자주 활용됩니다.
자, 다시 동네의 수상한 가게 이야기로 돌아와 볼까요?
그렇다면 국세청이나 수사 기관은 이런 빤한 수법을 정말 모르는 걸까요?
당연히 그들도 바보가 아닙니다.
국세청에는 ‘포렌식 회계사’라고 불리는, 장부의 빈틈을 찾아내는 매의 눈을 가진 전문가들이 있거든요.
이들은 단순히 매출 장부만 보는 게 아니라 아주 기상천외한 방법으로 가짜 매출을 잡아냅니다.
예를 들어 세탁소를 운영하며 돈세탁을 한다고 칩시다.
매출은 하루에 옷 100벌을 빨았다고 적혀 있는데, 수도요금이나 전기요금은 옷 10벌 빤 수준밖에 안 나온다면 어떨까요?
또는 식당에서 햄버거 1000개를 팔았다고 신고했는데, 냅킨이나 케첩 구매 내역은 턱없이 부족하다면요?
이런 사소한 데이터의 불일치가 바로 덜미를 잡히는 결정적인 단서가 됩니다.
수사관들은 가게 앞에 잠복해서 실제 손님 수를 세어보고 신고된 매출과 비교하기도 하고, 동종 업계의 평균 마진율과 대조해 보기도 합니다.
주변 가게들은 다 불경기로 힘들어하는데, 유독 손님 없는 저 가게만 매달 최고 매출을 경신한다면 누가 봐도 이상하니까요.
그래서 정말 ‘유능한’ 자금 세탁업자들은 세금을 꼬박꼬박 내는 것은 물론이고, 실제로 가게를 어느 정도 정상적으로 운영하려고 노력합니다.
일부러 할인 행사를 해서 진짜 손님을 끌어모으기도 하고, 최고급 장비를 들여다 놓기도 하는데요.
진짜 매출과 가짜 매출이 적절히 섞여 있어야 수사망을 피하기가 훨씬 수월해지기 때문입니다.
결국 돈세탁이라는 건 단순히 장부를 조작하는 것을 넘어, 가상의 현실을 진짜처럼 믿게 만드는 고도의 심리전이자 연기인 셈입니다.
범죄자들은 이 과정에서 막대한 세금을 내야 하지만, 그들에게는 그게 감옥에 가지 않고 돈을 쓰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수수료’라고 생각하는 거죠.
우리가 길을 가다 마주치는 손님 없는 가게들 중 일부는, 어쩌면 누군가의 검은 돈이 세상 밖으로 나오기 위해 숨을 고르고 있는 정거장일지도 모릅니다.
물론 대부분은 그저 경기가 안 좋아 손님이 없는 안타까운 자영업자분들이겠지만요.
하지만 이런 배경지식을 알고 세상을 보면, 텅 빈 가게를 바라보는 시선이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요?
경제 시스템의 이면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치열하고 은밀한 두뇌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 참 흥미로으면서도 씁쓸한 현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