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기술 경쟁, 승자 없는 게임이 될 수도 있는 이유

기술 지상주의자들의 맹목적인 질주

"빠르게 움직이고, 기존의 것을 파괴하라."

실리콘밸리를 지배하는 이 구호 아래, 인공지능(AI) 기술은 전례 없는 속도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특히 인간의 모든 지적 노동을 자동화할 수 있다는 '초인공지능(AGI)'을 향한 경쟁은 마치 새로운 군비 경쟁처럼 치닫고 있습니다.

이 경쟁의 주역들은 대부분 이 기술이 가져올 무한한 가능성과 부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맹목적인 질주 뒤에는 잘 이야기되지 않는, 그러나 매우 치명적인 질문이 숨어 있습니다.

만약 AGI가 그들의 의도대로 완성된다면, 과연 그들이 만들어낸 세상에서 그들의 제품을 사줄 소비자가 남아있을까요.

AI가 인구의 60~80%를 절대 빈곤으로 내몬다면, 그들이 만든 SaaS, 로봇, 서비스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이 될까요.

이 질문은 단순히 기술의 윤리적 문제를 넘어, AI 혁명의 근본적인 자기 파괴적 모순을 드러내며 우리 사회의 미래에 대한 깊은 성찰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외면당하는 질문 '그 후에는 무엇이 오는가'

일반적으로 AI 혁명이 가져올 미래에 대한 논의는 크게 두 가지 시각으로 나뉩니다.

하나는 유토피아적 관점입니다.

AI가 인간을 고된 노동에서 해방시키고, 생산성을 극대화하여 모든 인류가 풍요를 누리는 '후기 희소성(post-scarcity)'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기대입니다.

과거 자동차의 등장이 마부라는 직업을 없앴지만, 자동차 산업이라는 훨씬 더 큰 새로운 시장을 창출했듯이, AI 역시 새로운 종류의 일자리와 산업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낙관론입니다.

이 관점에서는 AI가 빈곤 문제를 해결하고, 모든 사람이 자신의 잠재력을 탐구할 더 많은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반면, 다른 한쪽에는 극도의 비관론, 즉 디스토피아적 관점이 존재합니다.

이 관점은 기술 발전의 과실이 극소수의 엘리트에게만 집중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AI와 로봇을 소유한 자본가 계층은 더 이상 인간 노동력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되고, 대다수의 인류는 경제적으로 쓸모없는 존재로 전락하여 부와 권력의 양극화가 극단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입니다.

이 시나리오에서 사회는 영화 '엘리시움'처럼 소수의 부유층이 첨단 기술로 보호받는 유토피아에 살고, 대다수는 무너진 세상에서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기술 엘리트들의 숨겨진 동기

그렇다면 기술 개발의 선두에 선 이들은 이 디스토피아적 가능성을 정말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요.

이에 대한 대중의 시각은 냉소적입니다.

가장 지배적인 의견은 그들이 이 문제를 모르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외면하거나 혹은 자신들만의 해결책을 가지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 해결책이란 바로 '기술을 이용한 통제'입니다.

AI가 대규모 실업과 사회 불안을 야기할 때, 그들은 같은 기술을 활용해 감시 체계를 구축하고 반대 세력을 억압함으로써 자신들의 부와 안전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AI 기반의 안면 인식, 드론, 자율 무기 시스템은 소수가 다수를 통제하는 것을 기술적으로 가능하게 만들 수 있습니다.

이는 일부 부유층들이 '둠스데이 벙커'를 짓고 사회 붕괴 시나리오에 대비하고 있다는 소문과도 맞물려, 그들이 대중과의 공존이 아닌 '분리'와 '지배'를 꿈꾸고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킵니다.

또 다른 시각은 '기술 개발 경쟁'의 논리 자체에 주목합니다.

이는 마치 핵무기 개발 경쟁과 같아서, '내가 만들지 않으면 경쟁자(혹은 적대 국가)가 먼저 만들어 나를 지배할 것'이라는 공포가 모두를 멈출 수 없는 질주로 내몬다는 것입니다.

AI의 잠재적 위험성을 알면서도, 경쟁에서 뒤처지는 것이 더 즉각적이고 확실한 위협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누구도 브레이크를 밟을 수 없는 '죄수의 딜레마'에 빠져있다는 분석입니다.

시스템의 자기 파괴적 논리

이 문제를 더 깊이 파고들면, 이는 개별 기술 기업가들의 윤리나 생각을 넘어선 '자본주의 시스템' 자체의 문제와 연결됩니다.

자본주의는 본질적으로 '무한한 성장'을 추구하며, 단기적 이익 극대화를 최우선 목표로 삼습니다.

이 시스템 안에서 장기적인 사회적 안정이나 윤리적 문제에 대한 고민은 종종 '외부 효과(externality)'로 치부되거나 무시되기 쉽습니다.

CEO는 주주들의 이익을 위해 행동해야 할 법적 의무가 있으며, 장기적인 사회 붕괴 가능성보다는 당장의 분기별 실적과 주가 상승이 더 중요한 평가 기준이 됩니다.

'나 하나 멈춘다고 세상이 바뀌지 않으니, 일단 나부터 경쟁에서 이기고 봐야 한다'는 개인의 합리적인 선택이 모여, 결국 모두가 파멸로 향하는 집단적 비합리성을 낳는 것입니다.

이러한 시스템적 문제는 '만약 AI가 모든 노동을 대체한다면, 소비는 누가 하는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답을 찾지 못하게 만듭니다.

지금의 시스템은 부의 재분배보다는 '집중'에 더 효율적으로 작동하기 때문입니다.

결국 AI 혁명은 '보편적 기본소득(UBI)'과 같은 급진적인 부의 재분배 시스템 도입이나, 자본주의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 없이는 스스로의 시장을 파괴하는 모순에 봉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향하고 있는가

AI를 향한 맹목적인 질주는 우리 사회가 중대한 갈림길에 서 있음을 보여줍니다.

이 기술은 분명 인류를 전례 없는 풍요와 해방으로 이끌 잠재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현재의 경제 및 사회 시스템과 결합했을 때, 대다수를 소외시키고 사회 전체를 불안정하게 만들 수 있는 거대한 위험 또한 내포하고 있습니다.

'기술은 그저 도구일 뿐'이라는 말은 절반만 맞는 말입니다.

그 도구가 누구의 손에 들려, 어떤 목적을 위해, 어떤 규칙 아래에서 사용되느냐에 따라 그 결과는 극과 극으로 달라질 수 있습니다.

기술 엘리트들이 이 문제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믿는 것은 지나치게 순진한 생각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그들은 우리와는 전혀 다른 미래를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의 과제는 기술 발전의 속도에 맞춰, 그 기술이 인류 전체의 이익을 위해 사용될 수 있도록 하는 사회적, 윤리적, 그리고 정치적 '규칙'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렇지 못한다면, AGI를 손에 쥔 승자는 결국 아무도 구매해 주지 않는 텅 빈 시장과, 자신들을 향한 분노로 가득 찬 폐허 위에서 고독하게 군림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진정한 의미의 승리가 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