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일본은 스타트업이 별로 없나?
작년 가을쯤인가 Figma가 Adobe사에 200억 달러에 인수됐다는 기사를 봤었는데, 벤처기업 하나 잘 만들면 인생 대박을 터트릴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도 취미로 웹 개발하는 사람으로서 너무 부러운 기사였는데요.
실리콘밸리에서는 10억 달러 기업 인수 얘기가 심심치 않게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그래서 신생 부자가 나타나고 사라지고, 우리나라도 카카오, 네이버 같은 신생 재벌기업이 탄생하고, 이 모든 게 스타트업(벤처기업)에서 시작된 겁니다.
급속도로 빠른 정보화 사회로의 전환 때문에 우리는 현재 글로벌 스타트업이 만들어준 생활 속에서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요.
구글, 아마존, 트위터가 그렇고, 코로나 백신 Moderna, 전기자동차 Tesla도 우리에게 삶의 변화를 준 스타트업 기업들이었습니다.
스타트업하면 미국의 실리콘밸리가 유명한데요, 미국 이외의 나라에서도 스타트업 붐은 점점 커지고 있습니다.
한국은 판교를 기점으로 IT분야 스타트업이 모여있는 형국이고요. 그런데 일본만 유독 스타트업 붐에서 뒤떨어져 있습니다.
CB Insights가 정리한 전 세계 1,170개의 유니콘 기업(1억 달러 이상으로 평가된 성공적인 스타트업) 중 644개, 즉 반 이상이 미국에 있습니다.
중국은 302개로 두 번째로 많으며, 인도는 108개로 세 번째입니다.
그렇다면 일본에 위치한 유니콘 기업은 몇 개일까요?
8개입니다!
미국의 스타트업 성공 사례로 볼 때 1% 미만입니다.
세계에서 세 번째로 큰 경제대국인 일본은 스타트업 성공 지수에서 유럽의 작은 나라인 스위스와 같은 19위인데요.
일본은 멕시코(8), 인도네시아(12), 브라질(16)보다도 등수가 낮고, 심지어 인구가 일본의 절반도 안 되는 우리나라 한국의 절반도 되지 않습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는 유니콘 기업이 18개나 있네요.
우리나라는 야놀자, 토스, Yello Mobile, 마켓컬리, 당근마켓, Tridge, 위메이크프라이스, 직방, 무신사, 메가존(MEGAZONE), L&P Cosmetic, BucketPlace, RIDI, GPClub, Aprogen, Dunamu, IGAWorks, Socar
일본에는 왜 스타트업이 더 적은 걸까요?
돈 문제는 아닙니다. 기존의 일본 대기업들은 벤처 투자를 적극적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위치가 일본이 아니라 실리콘밸리입니다.
일본 사회 분위기도 스타트업에 적극적입니다. 지방 정부들은 스타트업을 위한 자금, 사무실, 창업자를 위한 특별 비자도 제공하는 등 일본의 실리콘밸리를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Plug and Play(도쿄, 오사카, 교토), 스타트업 허브(고베), Google for Startups 등이 있죠.
그러나 일본에 위치한 대부분의 스타트업들은, 일본 시장을 위해 타국에서 넘어온 회사나, 아니면 지역적인 서비스에 국한된 소규모 기업만 있고, 전체적인 혁신을 바탕으로 기존 산업에 큰 임팩트를 줄 스타트업은 별로 없습니다.
일본은 도요타, 닌텐도, 시세이도, 산토리와 같이 세계적인 대기업이 나올 수 있는 환경이지만 혁신을 요하는 스타트업을 기대할 수 있는 이유가 없습니다.
그것은 문화 때문인데요.
일본 문화는 협업, 숙련, 고품질에 능숙하지만, 오늘날 빠르게 움직이는 사회 움직임에 대응 못 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새로운 것을 깨뜨리는 것에 대한 뿌리 깊게 박힌 혐오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실리콘밸리에서는 훌륭한 아이디어가 있다면 직장을 그만두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투자자금을 모아 스타트업을 만듭니다. 그런 다음 벤처 투자자와 벤처 자본을 찾아 본격적인 비즈니스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자금을 조달합니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는데, 바로 대부분의 벤처투자자들은 수익성이 높은 비즈니스를 찾고 있다는 건데요.
실제로 실리콘밸리에서는 대박을 터트릴 경우 어마어마한 부를 획득할 수 있기 때문에 벤처 투자자들이 여기저기 투자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을 처음 시도하는 사람들이 자금 조달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이 되는 거죠.
벤처 투자자들도 여러 개의 투자 실패에도 불구하고 하나만 대박이 터진다면 엄청난 이익을 얻을 수 있기 때문에 고수익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결과론적으로 실리콘밸리의 고위험 고수익(High Risk, High Return) 문화와 반대로 일본은 안정적인 것만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스타트업이 활성화되지 못하면 면이 있습니다.
일본에서 스타트업이 활성화되지 않는 방해 요인
- 경직된 고용 시장
일본은 정년 보장의 나라라고 알려져 있는데요.
평균적으로 회사에 12년 (대기업의 경우 15년)이나 다니고 있는 나라입니다.
미국의 경우 4.3년에 불과하죠.
직장인의 승진은 경험이나 기술에 따라 결정되지 않고, 보통 회사 내에서의 연차에 따라 결정되며, 스타트업을 하려면 또는 스타트업에 합류하려면 현재 다니고 있는 안정적인 직장을 그만둬야 하는데, 쉽지는 않죠.
만약 실패하면 다시 예전과 같은 직장에 들어가기가 사실상 어렵습니다.
- 보수적인 구매자
미국에서는 원가절감만 된다면 그 제품이 아직 미흡하고, 신생 회사라 하더라도 시도해 보는 일이 많은데요.
일본 기업들은 예전부터 구매해 왔던 공급업체와 영원히 함께하는 경향이 있어, 신생 업체의 제품은 믿지 않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스타트업의 제품을 사려고 하지 않는 문제로 귀결되는 거죠.
- 실패에 대해 용인하지 않음
일본에서 스타트업했다가 망하면 인생이 파탄 났다고 하는데요.
영원히 실패자라는 낙인이 찍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위험을 감수하기가 어려운 사회환경인 거죠.
반면에, 실리콘밸리에서는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는 말이 맞게 한번 실패하면 다시 시작하듯이 계속 실패를 밑거름 삼아 더 좋은 계획하에 다시 시작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 기업 인수 부재
실리콘밸리에서는, 특정 스타트업이 빠르게 성장한다면, 기존 대기업들이 방대한 금액으로 그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일이 비일비재한데요.
사실, 미국의 많은 대기업은 자사의 제품 개발을 포기하고, 시장에서 성공한 스타트업 제품을 바로 인수합니다.
반면, 일본 기업들은 스타트업을 인수하는 대신 내부에서 새로운 제품을 개발하는 것을 선호합니다.
그래서 스타트업의 인수가 없다면, 투자자에게 이익을 돌려줄 방법이 없고, 스타트업에 투자할 이유도 없어지는 거죠.
신생 스타트업의 주식 상장 같은게 바로 투자자에 막대한 이익을 돌려주는 방법인데요.
그래서 미국에서는 신생 스타트업의 기업 공개가 많은 데 비해 일본에서는 별로 없습니다.
- 사회적 분위기가 다름
실리콘 밸리에서는 대부분 사람이 떼돈을 버는 것에 환호하지만, 반면 일본의 사회는 뭐랄까 전체주의적인 개념으로 사회 안정, 공동의 번영 즉, 사치스러운 부의 과시보다 조화로운 사회를 추구하는 경향이 있어 스타트업의 탄생 배경부터가 약간 틀립니다.
- 암기 중심 교육 시스템
우리나라도 그렇고 일본도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이 암기식입니다.
반면 미국은 창의적인 걸 중요하게 여기죠.
그래서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미국에서는 더욱더 창의력이 보답받는 사회가 되고 그게 스타트업과 연결됩니다.
- 이민자 수용
실리콘밸리에서 성공한 스타트업의 55%는 이민자들이 창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일부는 대학으로 유학 오는 이민, 가난과 전쟁을 피하고자 오는 이민, 또는 스타트업을 위해 이민하는 경우, 여러 가지가 있죠.
그러나 일본은 언어 문제, 비자 문제, 그리고 일본 사회의 폐쇄성 때문에 외국에서 온 이민자들이 스타트업을 창업하고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죠.
결론
그렇다면, 일본에서 스타트업 문화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한 것일까요?
절대 아닙니다.
일본 스스로 변화가 필요하다는 합의가 이루어지면 금방 따라갈 수 있는 저력이 있는 나라입니다.
19세기 후반 일본이 아시아에서 제일 먼저 외국에 문호를 개방했던 것만 알 수 있죠.
아마 요즘은 인구 감소와 삶의 수준 하락으로 인해 그 합의가 곧 빠르게 이루어질 수도 있습니다.
물론 실리콘밸리 모델도 완벽하지는 않습니다.
빈부 격차가 커지고 해고가 쉬워 고용시장이 가변적이고, 경제가 급격하게 변동되면서 많은 사람의 삶이 어려워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진보를 등한시하고 과거에 안주하는 것은 별로 안 좋다고 생각합니다.
그럼.